케냐의 여성 노벨 평화상 수상자 ‘왕가리 무타 마타이’를 에스페란토로 만나다.
Jen estas filmo pri Wangari Muta Maathai, Nobel-premiito

아프리카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왕가리 무타 마타이 박사의 영상을 아래 주소에서 에스페란토 자막으로 볼수 있습니다.  번역은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 아프리카 위원회 Adjevi Adje 님이 맡았습니다.

www.les-amis-de-wangari-maatha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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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francigo de tekstoj por la asocio Les Amis de Wangari Maathai pri la Nobelpremiito Wangari Maathai por diskonigi en Esperanton ŝiajn porpacajn aktivaĵojn en Kenjo. Cetere, mi ankaŭ estas la tradukinto de la teksto de la filmo “Kreskigi radikojn“ al Esperanto. Ĝi estas spektebla nun kun subtitolo per : www.les-amis-de-wangari-maathai.org (Skribita de Adjevi Adje)

 

왕가리 무타 마타이(, 1940년 4월 1일 ~ 2011년 9월 25일)는 케냐의 환경 운동가이자 정치 운동가이다.

그녀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난소암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72세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끝이 다가오자 톰 엠보야를 비롯한 케냐의 정치인은 유망한 학생들에게 서구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미국의 상원 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도 이러한 정책을 지지했고 마타이는 약 300명의 장학생 중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 1960년 9월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 후 마타이는 미국과 독일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1964년 마운트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나이로비에 있는 나이로비 대학으로 돌아가기 전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동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수의학)를 취득했다.

그녀는 1971년에 나이로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학장으로 임명된다.

그녀는 2002년 예일 대학교의 지속 가능한 삼림을 위한 국제 학회에 객원 교수(Visiting Fellow) 초청 자격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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