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Atena

2018.04.11 18:02

Kulturce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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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침마다 나는 일곱 시에 잠에서 깨어 맨발로 까치발을 하고 창가로 걸어갔다. 무거운 녹색 커튼 뒤에 몸을 숨긴 채 나는 커튼을 아주 살짝만 잡아당겼다. 그리곤 내 방 창문을 통해 우리 집 마당을 내다보았다. 판돌이 깔린 작은 길이 있고 빨간 튤립이 핀 화단과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키 큰 호두나무가 있는가 하면 흰 돌로 된 담과 기와 차양이 붙은 목재 대문이 보였다. 나는 남몰래 내가 연모하고 있는 소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의 이름은 스피리도노였고 나보다 세 살이 많아서 8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5학년이었다. 스피리도노와 그의 양친은 우리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그마한 우리 시의 시장이셨다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내가 뵙지 못했던 우리 친할아버지가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지으신 덩치 큰 우리 집의 이 층에 살았다.

스피리도노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고 아마 많은 소녀가 그를 사랑하고 있을 터였다. 적당히 날씬한 데다 큰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튼튼한 몸을 지닌 그는 수영을 잘 했다. 머리칼은 검고 숱이 많았으며 녹색이 도는 푸른 눈은 호두알같이 커서 나를 매혹했다. 그를 볼 때면 나는 숨이 멎는 듯했고 곧장 다른 세계로 날아가는 듯했다. 모든 게 금빛이며 동화 나라의 놀라운 음악이 울리는 세계로.

스피리도노는 아침마다 일찍 학교에 갔고, 바로 내 방 창문 앞으로 난 작은 길을 걸어 지나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무심하게, 아마 어느 영화에서 나왔음직 한 유쾌한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불며 지나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넓고 강한 수영선수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가 마당 문을 열고 나가고 나면 나는 꼭 꿈속에서 그를 본 것만 같았다.

그다음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 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를 다시 보고 싶었다. 엄마는 역사 선생이었다. 엄마는 나도 가르치고 그 아이도 가르쳤다. 엄마와 나는 함께 등교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단 한 번만이라도 스피리도노와 함께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함께, 옆옆이 나란히 걸어갔으면 했다. 우리 반 여학생들이 우리를 보고, 내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함께 학교에 오는 걸 부러워했으면 했다.

아무도 내 숨겨진 사랑에 대해 몰랐다. 내가 스피리도노를 사랑하리라고 짐작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스피리도노에게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난 알지 못했다. 그는 내게 인사하곤 했고, 때때로 학교에 대해 내게 물었으나 나는 늘 당황해서 차분히 대답하질 못하고 말을 더듬기 시작해서 그가 웃게 만들곤 했다.

나는 스피리도노를 사랑하고 있다고 정말 누군가한테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게 내게 감정을 일으키는지 얘기해주고 싶었으나 내겐 모든 걸 털어놓을 만한 진짜 친구가 없었다. 우리 엄마가 아주 엄한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우리 반 여자애들은 나를 피했다. 엄마는 모든 학생이 엄마가 가르치는 것을 완벽히 알고 엄마가 가르친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했고, 엄마가 역사를 사랑하는 것과 꼭 같이 역사를 사랑하기를 바랐다. 중요한 연도들과 사실들을 엄마가 기억하듯 학생들이 똑같이 기억하고 있기를 바랐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스피리도노를 사랑한다는 걸 말할 작정이었다. 사실 나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 엄마가 아닌가. 그러나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얘기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 사랑에 대한 엄마의 의견을 나는 무척 들어보고 싶었다. 엄마가 스피리도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는 능력 있는 학생이었고 역사 성적이 아주 좋았다.

어떤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휙 스쳤다. 왜 그런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는 내가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는 게 아주 유감스럽다. 난 쪽지에다 이렇게 썼다. “마들렌은 스피리도노를 사랑한다.”라고. 나는 되도록 필체를 바꿔보려 애썼고, 역사 시간 시작 직전에 그 쪽지를 교실 안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가 교실로 들어왔고 늘 그러듯이 엄마가 우리를 엄하게 바라보셨다. 그런 후 엄마는 보통 가방을 내려놓곤 하시는 교탁으로 다가가서 곧바로 쪽지가 있는 걸 보셨다. 그걸 쭉 읽으시고는 가방에 넣으셨다. 그다음 새로 배울 교과에 대해 말씀하셨다. 나는 수업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엄마가 그 쪽지에 대해, 내 비밀스러운 고백에 대해 뭐라 하실까?’ 하고 몇 번이나 내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오후에 나는 집에 돌아가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오시면 사랑은 너무나 아름다운 감정이고 사랑한다는 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씀하실 거라고 나는 상상했다. 그다음에 어쩌면 엄마는 내 느낌이 어떤지, 나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물으실 거라고.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오셨으나 엄마의 눈빛을 보고 나는 엄마 기분이 좋지는 않다는 걸 곧바로 짐작했다. 어쩌면 엄마는 그 쪽지를 버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와 나는 말없이 점심을 먹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안경 너머 엄마의 두 눈은 반짝거리는 은화 두 닢과 닮아있었다. 엄마는 곱슬머리가 아니었고 찡그린 두 눈썹은 매부리코 위에서 거의 붙어있었다. 내가 엄마를 잘 아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속에서 저절로 일어났다.

엄마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얼 꿈꾸는지, 뭔가에 대해 정말 꿈꾸기는 하는지, 내가 어림짐작할 수는 있을까. 우리가 단둘이서 얘기하는 건 드물었다. 더 흔했던 건 엄마가 내게 학과 예습이나 준비를 했는지, 숙제했는지 묻는 것이었고 엄마가 항상 반복했던 말은 내가 제일 공부 잘하는 학생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전교생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할지 모르겠다.

점심을 다 먹었을 때 나는 바로 식탁에서 일어섰으나 엄마가 나를 멈춰 세웠다.

“서두르지 마, 우리 얘기할 게 있어.”

하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앉았다. 나는 엄마가 한 사람이 다른 누구를 사랑할 때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가 하고 말하길 기다렸으나 엄마는 단지 나를 엄격히 지켜보기만 했고 가방에서 쪽지를 꺼냈다.

“이게 뭐지?”

엄마의 얼음 같은 눈빛이 나는 당황스러웠다.

“난 모르는데요……”

나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왜?”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다.

“속이지 마! 모두 털어놔!”

나는 침묵했다.

“넌 아직 애이고 사랑을 해서는 안 돼!”

그녀는 소리를 질렀고 왼손 약손가락에 낀 크고 무거운 은반지로 내 머리를 쥐어박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엄마, 제발, 날 때리지 말아요. 끔찍하게 아프다고요!”

그러나 엄마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그 무거운 은반지로 내 머리를 때렸다.

그때 이후로,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꼭 누가 크고 무거운 은반지로 내 머리를 치는 것처럼 바로 머리가 아파졌다. 그 후 난 엄마에게 사랑에 관해서라면 절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아이였고 엄마가 일평생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몰랐다. 엄마는 아빠조차 사랑하지 않았다. 엄마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아빠와 결혼한 것이었다.

소피아, 2012년 9월.

 

-끝-

 

장수미/2018년 4월 22일/010 7552 2480/koreanger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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