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서 온 남자 / Glorina

2018.03.02 14:07

Kulturcentro

조회 수1228

과거에서 온 남자

 

우리가 소피아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여전히 외교관이었던지 아니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나는 아이여서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엄마, 아빠, 동생과 나, 우리는 모두 돌아왔으나 우리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전에 우리는 아빠가 외교관이어서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대사관에서 살았다. 내 동생과 나는 그곳에서 유치원에 다녔다. 우리는 노르웨이 아이들과 놀았기 때문에 노르웨이어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그 언어를 다 잊어버렸다. 어떤 때는 노르웨이어 단어를 기억하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단 하나의 노르웨이어 단어도 나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전에는 유창하게 노르웨이 언어를 구사했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말이다. 나는 그 언어를 이미 알고 있던 아빠보다도 더 말을 잘 했었다. 그런데도 어떤 단어를 즉시 기억해낼 수 없었던 것이 여러 번 있었다. 엄마는 노르웨이어를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나의 동생 (우리는 쌍둥이다)은 뭔가 비밀을 얘기할 때, 사람들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고 종종 노르웨이어로 말을 하곤 했는데, 그때 엄마는 화를 내고 우리를 나무랐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아빠는 외교관이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외교관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돌아오고 나서 아빠는 기분이 안 좋았다. 그는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는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는 거 같았다. 엄마도 똑같이 말이 없었다. 나는 왜 그들이 그렇게 침묵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는 여름이었고 날은 따뜻했고 하늘은 깊고 밝은 하늘색이었다. 여름날에도 춥고 흐릿한 노르웨이와는 달리. 소피아의 거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그들은 다 웃고 있는 거 같았다. 엄격해 보이고 심각해 보이는 노르웨이 사람들과는 달리. 그러나 엄마 아빠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여느 여름처럼 아빠의 휴가로 소피아로 돌아온 줄 알았다. 그러나 한번은 엄마가 아빠에게 묻는 걸 들었다.

“이제 어떡할 거예요?”

“일 찾고 있어. 월급은 예전같이 많지는 않을 거야,”하고 아빠가 대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미로와 나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공부가 어려웠다. 내가 불가리아어로 뭔가 말하고 싶을 때는 항상 노르웨이어 단어가 튀어나왔다. 자주 나는 불가리아어가 아닌 노르웨이어로 말을 시작하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이 웃고 놀렸다.

나는 놀림을 당하기보단 가만히 있기를 원했다. 선생님이 질문했을 때 나는 대답을 안 했다. 그러면 그녀는 화를 내며 물었다.

“너 말할 줄 모르니? 만약 네가 말할 줄 모르면 이 학교에 안 다녀도 돼.”

그래도 나는 침묵을 지켰고 선생님 말씀을 듣지도 않았다. 미로는 빠르게 불가리아어에 익숙해져갔고 나보다 더 좋은 학생이었다.

겨울이 오고 새해가 오기 전날, 엄마가 사라졌고 우리는 홀로 남겨졌다. 그때가 내 인생에 가장 조용한 새해였다. 아빠와 미로와 나, 우리 세 사람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자정까지 텔레비전을 봤는지 미로와 나는 잠이 들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옷을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엄마는 없었고 아빠는 우리를 잠옷으로 갈아입히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엄마는 그달 내내 돌아오지 않았고 미로와 나는 매일 학교에 갔고 그리곤 돌아왔다. 아침에 아빠는 우리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셨다. 우리는 샌드위치와 과자를 샀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빠는 할머니를 불렀다.

아빠의 어머니가 지방에서 오셨고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마도 우리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든지 혹은 엄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든지 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왔을 때 집안 분위기는 좀 더 밝아졌다. 할머니는 요리해서 우리를 먹이셔서 우리는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았고 샌드위치와 과자를 더 이상 사 먹지 않아도 됐다. 저녁에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셨고 텔레비전은 못 보게 하셨다. 우리 할머니는 예전에 선생님이셔서 우리가 숙제했는지 학교 수업 준비는 잘 했는지를 철저하게 확인하셨다. 나와 미로는 엄마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할머니에게 물을 용기가 없었다. 엄마는 떠난 이후로 우리에게 어떤 연락도 없었다. 아빠는 계속 침묵하셨다. 심지어는 아빠는 할머니하고도 자주 얘기하지 않으셨다. 한번 할머니가 아빠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네가 외교관이었을 때는 걔한테는 좋았겠지만 네가 직장을 잃었을 때는 걔는 더 이상 네가 필요가 없었던 거야.”

아빠는 대답이 없으셨지만 나는 엄마에 관한 얘기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소피아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떠났다. 이 사실이 나를 생각에 빠져들게 했다. 외교관인 남자를 찾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만약 남자가 더 이상 외교관이 아니면 그에게 흥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것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좋은 분이셨고 나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녀는 큰 키에 긴 금발머리와 하늘빛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우리가 함께 있었을 때 엄마는 자주 미소 지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초콜릿과 장난감과 책을 사 주셨지만, 아빠는 돈만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뭘 원하는지는 묻지도 않으셨다. 그는 항상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와 미로는 우리가 무엇을 꼭 원하는지 몰라서 모든 걸 샀다.

겨울의 끝자락에 엄마가 예기치 않게 돌아오셨다. 미로와 나는 너무 기뻤다. 왜냐하면, 우리는 엄마가 다시는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삼월의 어느 흐린 날 왔다. 난 그때 비가 왔는지 눈이 왔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방이 추웠다. 나와 미로가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을 때 엄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우리는 벌떡 일어나서 그녀를 얼싸안고 뽀뽀했다. 그녀는 큰 가방 두 개를 가지고 와서 우리 옷을 거기에 넣었다.

‘너희들은 엄마와 함께 갈 거야’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엄마가 급히 서둘러서 가방에 옷을 넣는 것을 바라만 봤다. 그 후에 엄마와 같이 밖에 나와 보니 길에 모르는 남자가 차를 가지고 서 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출발했다. 우리는 그렇게 아빠에게 작별 인사도 못 했다.

우리는 엄마와 모르는 남자와 딴 구역에서 살기 시작했다. 우리의 새로운 집은 컸으며 넓은 마당과 연못과 테니스장이 있었고 미로와 나는 거기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놀았다. 우리의 새 아버지도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우리와 얘기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그를 거의 볼 수도 없었다. 그 집은 워낙 크고 방도 여러 개 있어서 그가 집에 있는 지 없는지를 모를 때도 많았다. 차도 여러 개 있어서 무슨 차를 타고 나갔는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아빠와는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든지 정처 없이 도시를 걸어 다니든지 했다. 간혹 그는 우리가 어떻게 지내는지 돈은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엄마가 돈을 줬기 때문에 돈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아빠가 사라졌다. 그는 지방에서 살려고 떠나기 때문에 우리를 좀 더 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우리에게 말했었다. 이때까지는 한 달에 한번 그를 만났기 때문에 “조금 더 뜸하게”만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년이 지났을까? 아빠가 뜻밖에 전화를 하셨다.

그는 그가 소피아로 올 것이며 그때 우리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났다. 셋이서 생선 요리만 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나왔을 때 아빠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급하다면서 택시를 세워서 떠나가 버렸다. 우리는 그가 어느 도시에 사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다. 이렇게 만난 후에 아빠는 가끔 드물게 전화해서 우리를 만났는데 일 년에 한 두 번이 고작이었다. 아빠가 전화를 더 이상 하지 않고 나서는 우리도 아빠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전화번호를 바꿨는데 우리는 그 번호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이 된 초여름에 아빠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진짜 탐정 여정을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어디부터 찾기 시작할지도 막막했다. 먼저 나는 아빠가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낸 조그마한 도시로 가 보기로 했다. 우리 조부모님은 돌아가셔서 거기 가더라도 누구를 찾을지 몰랐지만 나는 출발했다. 나와 미로가 어렸을 때 우리는 자주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머물렀다. 여름에는 한 달 내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쉽게 그 집을 찾았다. 그 집은 역과 가까이 있었다. 할아버지 집은 보리수가 있는 길에 있었는데 마침 꽃이 활짝 피어서 향긋한 냄새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그 길을 걸으니 그때 나는 맨발에 짧은 바지를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갖다 드리려고 따뜻한 빵을 사서 냅다 달리던 몇 년 전 아이였을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부모의 집은 바뀐 것 같았다. 벽은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마당에는 정원이 있었고, 여름 나절에, 미로와 내가 책을 읽곤 했던 잔디 위에는 갓난아기가 걱정 모르고 요람에 누워 놀고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들겼다. 안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는데, 그녀는 다람쥐의 눈처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그녀에게 트라얀 이코노모브 씨가 여기 살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엷게 웃으면서 자기들이 몇 년 전에 그 사람에게서 이 집을 샀다고 말했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빠는 태어난 고향 집을 판 것이었다. 그 여자는 아빠가 어디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보리수나무가 있는 길로 나가 사방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아빠 사촌이 가까이 살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 내고는 그녀에게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으려고 그 집을 향해 출발했다. 릴리 고모 집은 바로 그 다음 길에 있었다.

내가 과거를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유년 시절 기억은 선명하다 못해 거의 사라지지 않는 게 분명하다.

“드라고, 오랜만이네. 웬일로 나에게 올 생각을 한 거야? 난 다시는 너와 네 동생 미로를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몇 년 만에 이 도시에 온 거지?”

나는 그녀에게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누구를 찾으러 여기 왔는지를 설명했다. 릴리 고모의 얼굴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웃음이 사라지자 나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쁜 일이 아빠에게 일어났을까 봐 겁이 났다.

“이혼 후에 아빠는 변해 갔어.” 릴리 고모가 망설이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어. 아주 드물게 우리를 찾아오기는 했어. 너희 조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집을 팔고는 더 이상 우리에게 오지도 않았어.”

릴리 고모는 꽃이 핀 보리수가 있는 길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저는 아빠를 찾고 싶어요.”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 아빠가 어디 있는지 몰라.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없어. 다만, 여기 아빠 친구 베세린 씨가 살고, 가끔 둘이 만나기는 했어. 혹시 그가 아빠에 대해 알지 몰라.”

릴리 고모는 어디 가면 아빠 친구를 찾을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줬고 나는 즉시 그의 집을 찾으러 떠났다.

아빠와 베세린 씨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 나는 그를 찾았고 그는 많이 늙어 있었다. 그가 아빠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내가 누구인지 누구를 찾는지를 말하니 그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제 보니 네가 너의 아버지와 무척 닮았구나. 너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너와 똑같았어.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지만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았지. 나는 여기 머물렀고 너의 아빠는 세상을 돌아다녔지. 너의 아빠는 외교관이었고 노르웨이인지 스웨덴인지에 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노르웨이입니다.”

“그래 소피아로 돌아오고 난 뒤 가끔 너의 조부모님을 만나러 여기 다녀가곤 했지. 그러나 그분들이 돌아가시자 집을 팔고, 외딴 산속에 살고 싶다고 하데. 그러더니 로도프(불가리아 남부의 산악지역 – 역자 주) 지역의 스몰랸 근처 하소비카라는 마을에 집을 사더라고. 난 왜 그 마을이 걔 마음에 들었는지, 왜 세상에서 가장 궁벽한 곳에 살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어. 걘 항상 대도시에만 살았었잖아.”

나는 베세린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로도프 지역 하소비카 마을로 가기로 했다.

그 다음 주 토요일에 나는 출발했다. 스몰랸에서부터는 택시로 하소비카 마을까지 갔다. 차가 산 위로 올라갔다.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높은 산에는 벨벳같이 부드러운 푸른 풀밭이 깔려 있었다. 또한 백 년 된 소나무 숲이 있었고 키 큰 나무들이 마치 파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었다. 그것은 내가 노르웨이에서 돌아왔을 때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잠자고 있는 끝없는 호수 같은 파란 불가리아 하늘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했다.

차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오랫동안 달렸다. 새로운 곳이 나타나고, 더 새로운 볼만한 풍경이 또 나타나고 마치 내가 신비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듯했다. 다음 구비가 지나기만 하면 갑자기 예기치 않게 녹색 난쟁이들이 나타나 차를 멈추게 하고는 나를 키 큰 소나무 숲에 감춰진 그들의 작은 궁전으로 유혹할 거 같았다.

자동차는 이상한 마을의 크지 않은 공터에 멈춰 섰다. 공터는 마치 녹색 풀밭에 수건 한 장을 던져놓은 듯 했다.

그 마을의 집들은 이웃해 있는 작은 언덕 위에 흰 비둘기들이 앉아있는 것 같았다. 내 앞에는 어떤 상점이 있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뒤에는 우체국이 있고 그 옆에는 술집이 있었으나 다 닫혀 있었다. 때는 오후였는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을을 보면서 아빠의 집을 찾을 수 있겠나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마을이 여러 언덕 위에 걸쳐져 있었지만 작은 마을이었다. 언덕마다 집이 한 채씩 정도 있어 보였고, 그 언덕으로 가는 길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디선가 키 작은 노인이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는 인사 받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아마 내가 아는 사람인가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거 같았다. 내가 말하려고 했을 때 그가 먼저 물었다.

“누구 아들이오?”

“저는 여기 살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굴 찾소?”다시 그가 물었다.

“저는 트라얀 이코노모브를 찾습니다. 그의 집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그를 알고 있소. 2년 전부터 그가 여기 살고 있소. 그는 데르모나 씨의 집을 샀소. 저 언덕 위에 있소. 노인은 멀리 있는 언덕을 가리켰다. 그가 이 분수도 만들었지 – 하며 광장에 있는 돌로 만든 분수를 보여줬다 – 더 정확히 말하면 분수 만드는 데 드는 돈을 냈지. 그는 이상한 사람이야.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아. 우리는 그가 무얼 했던 사람인지, 어디서 그가 왔는지, 왜 여기 사는지 몰라.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장관이나 그 비슷한 중요 인사였다고 하고 다른 어떤 이들은 그가 외국에 살았는데 여기 몸을 숨기려고 왔다고 그러고. 그 사람에 대해 온갖 소리들을 다 하지. 사람들이란 그렇지 않은가. 말들을 하고 또 했지만 이젠 벌써 그쳤지. 말이 있잖은가, 어떤 기적도 사흘밖에 안 간다고. 자네가 나에게 묻는다면, 그는 과거에서 온 남자라고 할 거야. 맞아, 과거에서 온 남자.”

“어떻게 그의 집에 갈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저기, 저 넓은 터 뒤에 길이 있어. 그 길로 가 봐.”

난 그 노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가 가리킨 넓은 터를 향해 갔다. 그 길을 따라가니 언덕이 나왔다. 나는 계속 올라갔고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언덕은 파도치는 푸른 바다 같았다. 산 위의 하늘은 장미처럼 자줏빛이었다.

나는 어떤 집 앞에 멈추었다. 그것은 크지 않은 집이었고 돌과 나무로 지어졌고, 큰 베란다가 있는 집이었다. 안뜰은 돌로 된 울타리가 있었고 지붕이 있는 두터운 나무로 된 대문이 있었다. 나는 안뜰로 들어갔다. 어디에도 아무도 안 보였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베란다로 향하는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서서 기다렸다. 갑자기 밑에 안뜰에서 누군가가 계단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몸을 돌렸다.

“드라고” 아빠가 나직이 불렀다.

“아빠”

그는 늙어 보였고 그의 머리는 하얘져 있었다. 두꺼운 눈썹은 회색 눈을 거의 덮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나는 물었다.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난 작업실에 있었어,” 그가 대답했다. “와 봐.”

난 베란다에서 내려와 우리는 같이 집 뒤에 있는 작업실에 갔다.

“여기서 무얼 하시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작업을 조금 하고 있어.”

나는 사방을 둘러봤다.

그 방은 나무로 된 조각상과 상자들, 나무로 된 병들, 조그만 통 같은 물건들로 꽉 차 있었다. 한 번도 아빠가 나무로 이런 물건들을 깎아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앉아라.” 아빠가 직접 만든 것 같아 보이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앉았다.

“어떻게 지내니?” 아빠가 물었다

“잘 지내요.”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고 언젠가 내 어릴 때처럼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그를 다시 찾아서 행복했다. 내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그는 나의 아빠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그가 나무 공예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길 줄은 알지 못했다. 또한, 그가 왜 여기 와서 살고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아빠에게 그걸 물어보리라고 스스로 다짐했을 뿐이다. 나는 마을 광장에서 만난 노인이 아빠에 대해서 말한 ‘그는 과거에서 온 남자다’라는 말을 다시 기억했다. 어쩌면 그 노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도 아빠도 과거에서 온 사람이었으나, 나는 과연 과거가 있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순간까지의 나의 인생이 기차처럼 빠르게 지나가서 나는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과거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아빠의 과거를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짧은 시간 그와 같이 있었지만 나는 그를 원망할 수 없었다.

 

2013년 4월에, 소피아에서

장영은 2018년 4월 22일 010-3402-7998

jjang7990@gmail.com

첨부파일 2

댓글 쓰기

비회원 프로필 이미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