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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저널] 바벨탑 이전의 시대를 그리는 사람들

 

김보람 기자 (yullov7@snu.ac.kr)

 

에스페란토, 언어 불평등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희망하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바벨탑의 비극적인 사연을 기억하는가. 높디 높은 탑을 세움으로써 절대자의 권위를 침범하려는 인간들에게 신은 ‘언어 혼란’이라는 잔혹한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바벨탑 이전의 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사용하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바로 그들이다.

희망하는 사람,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자멘호프 박사.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루드비히 자멘호프(1859∼1917)는 평화를 갈망했던 이상주의자였다. 1859년 폴란드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인간 세계의 불화와 증오가 언어 장벽 때문에 생긴다고 믿었다. 자멘호프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폴란드의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지배 민족인 러시아인과 피지배 민족인 폴란드인, 독일인, 유태인 등 4민족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민족 간에 발생하는 언어의 문제를 생생하게 경험하며 성장했다. 그리하여 1887년에 자멘호프는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만을 모아 16개의 기본 문법과 918개의 단어를 담은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발표하게 된다. ‘에스페란토’란 이름은 1887년 발표한 국제어 문법 제1서에 등장한 자멘호프의 필명(에스페란토esperanto는 ‘희망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유래됐다.

한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사
우리 나라에 에스페란토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계기는 1920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시인 김억이 서울YMCA에서 개최한 공개 강습회였다. 이 강습회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같은 해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가 창립됐다. 이후에도 김억은 1920년에 발간된 에 에스페란토 창작시를 발표하는 등 꾸준히 에스페란토 보급 활동에 앞장섰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아나키즘을 지향하면서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이다. 그는 해외에서 항일 운동을 직접 전개하면서 에스페란토를 통한 문학작품으로 애국정신과 항일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 한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던 시대였기에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정기적으로 에스페란토 강습란이 개재되기도 할 만큼 에스페란토에 뜨거운 관심이 몰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단국대, 원광대, 한국외대 등에 에스페란토 강좌가 개설돼 있으며 에스페란토 문화원(http://www.esperanto.kr)에서 매달 개최하는 초급 강좌를 거쳐 간 사람만 해도 1800여명에 이른다. 사전 구매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현재 국내에서 에스페란토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에스페란티스토)은 약 3000명이라 할 수 있다.

배우기 쉽고 중립적인 인공어
독일의 번역학자 Wolfram Wilss은 자신의 저서에서 에스페란토어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국어에 대한 강한 결속감이 ‘계획된’ 인공어인 에스페란토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스페란토 문화원의 이중기 원장은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예외가 없는 명확한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쉬워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에스페란토는 ‘1자 1음’의 원칙에 따라 모든 문자는 하나의 소리를 내고 묵음이 없으며, 강세(强勢)는 항상 뒤에서 둘째 음절에 있다. 또한 특정한 의미를 갖는 접두어와 접미어를 사용하여 많은 단어를 파생시켜 사용하므로 단어 암기가 용이하다. 1984년 이탈리아의 한 소학교에서 9~11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어와 에스페란토를 160시간 학습시킨 후 어학 능력을 비교했을 때 습득 정도에 있어 프랑스어가 35%인 반면에 에스페란토는 80%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는 에스페란토가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게다가 민족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여타 자연어와는 중립적이기 때문에 국제어로서 사용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국제 교류 가능, 사용 인구가 적은 게 한계

스카이페로 스페인 에스페란티스토와 대화중인 에스페란토 문화원 이중기 원장.

에스페란토의 가장 큰 한계는 아직까지 그 사용 인구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에 따르면 에스페란토 사용 인구는 약 200만 정도에 불과하나 이 수치 또한 정확하지는 않다. 언어가 사회적 약속을 바탕으로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에스페란토가 완전한 국제공통어로 인정받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에스페란토를 두고 활용도가 낮은 사어(死語)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중기 원장은 홍보 부족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전부 돈 아닙니까. 제품은 너무 좋은데 널리 알리기가 어렵네요.” 그러나 이 원장은 에스페란토를 배우면 다양한 국제 교류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강조한다. “언어를 배운 즉시 인터넷 무료 전화 스카이페 등을 통해 전 세계의 에스페란티스토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습니다. 사용 인구는 다소 적지만, 같은 언어를 쓴다는 동지애가 무척 강해요.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 현지 에스페란티스토 친구에게 연락을 하면 공항에 마중을 나오거나 숙박을 제공해주기도 할 만큼 끈끈한 정이 있죠.”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세계 각지의 에스페란티스토 수천 명이 모이는 이 행사에서는 모든 프로그램이 통역 없이 오직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뤄진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같은 언어로 ‘LA ESPERO(희망)’을 노래하는 광경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민족의 다양성을 살리는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 사전에 수록된 ‘김치(kimĉio)’

에스페란토 주의는 ‘1민족·2언어주의’에 입각하여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중립적이고 배우기 쉬운 에스페란토의 사용을 주창하는 세계 언어 평등권 운동이다. 이중기 원장은 에스페란토의 평등성을 역설한다.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왜 영어를 사용해야 합니까. 게다가 에스페란토를 사용하게 되면 동시에 모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한국어를 지킬 수도 있습니다.” 에스페란토 평화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라 씨 역시 영어 제국주의의 횡포 속에서 대안이 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에스페란토라고 말한다. 국제 교류에 있어서 특정 국가가 가진 정치력이나 경제력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제 3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평등이라는 것이다.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민족성과 언어권을 존중하는 언어다. 에스페란토 사전에는 다양한 국가의 단어들이 수록돼 있는데 그 중 우리 나라의 단어는 ‘김치’와 ‘막걸리’, 2개다. 각 민족의 단어들이 그대로 에스페란토로 흡수되면서 여러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존중받고 보존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평등한 소통을 지향하다
에스페란토에 특별한 가치를 더해주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만인 평등과 세계 평화의 사상 때문이다. 자멘호프는 이를 ‘호마라니스모(인류인주의 또는 지구인주의)’라고 명명했다. 에스페란토의 상징인 ‘초록색 별’ 역시 평화를 상징하고 있다. 1905년 프랑스 북부 볼로뉴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에스페란토가 담고 있는 숭고한 정신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서울대저널 제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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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nujn.com/news/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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